마음의 기록

비와 소녀

wind15 2025. 4. 20. 23:03

비가 내린다 
작은 빗줄기로 시작된 비가 이제는 제법 굵어지고 있다
초록나무 사이로 
하얀세라복을 입은 소녀가 걸어간다
우산도 안쓰고 
단발머리보다 조금 더 긴 머리는 비에 젖어 얼굴에 반쯤은 달라 붙어있다
열네댓살 정도 되었을까 
이제 막 피어난 분홍빛 철쭉도 그 소녀가 맘에 걸렸는지
고개를 빼고 쳐다본다
소녀는 계속 걸었고 
비도 그런 소녀를 따라갔다
무슨 사연이 있는걸까? 사연이 있기엔 아직 어린데?
 
소녀는 빗속을 걷고싶었다
언젠가 한번은
'비를 맞고 싶어 맞으면 기분이 어떨까'
그래서 비가 내리자마자 무작정 나온거였다
그 날은 소녀의 엄마가 사준 하얀세라복을 처음 입은 날이었다
 
내리는 비가 소녀의 얼굴에 부딪칠때 마다 
미묘한 떨림이 왔다
마치 이름모를 작은 꽃송이 위에
바람이 살짝 얹혀서 흔들거리는 듯한 떨림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비는 계속 소녀와 동행을 했고 소녀는 점점 더 비에 빠져들었다
하얀세라복도 이미 다 젖어 몸에 달라붙었고 운동화는 물을 먹을대로 먹어 질척거렸다
저만치 서 있던
초록나무도 분홍빛 철쭉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동행하던 비가 소녀에게 묻는다
"넌 왜 비를 맞아? 우산도 안쓰고"
소녀가 비를 보며 대답한다
"응 비를 맞으면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어 그리고 해보구 싶었어 비 맞는거"
(비는 소녀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이야
어느날은 신데렐라가 되고 어느날은 하이디가 또 어느날은 새라가 되기도해"
"그거랑 비랑 무슨 상관이 있어?"
"아니 상관은 없어 그치만 내 마음이 막 움직여 꼭 상상이 현실이 되는것 같아"
(비는 소녀의 말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비가 말한다
"너 외로운 거구나 아직 그럴(외로움을 느낄)나이는 아닌것 같은데..."
"외로우면 너 처럼 그런 상상을 하기도 해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
비는 아까보다 더 세차게 내린다
소녀는 세라복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비를 쳐다보려하지만 
빗줄기가 너무 강해서 눈이 자꾸 감긴다
"나는 외로워서 비를 맞는게 아니야
이상하게 슬퍼 자꾸만 마음이 쓸쓸해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어"
비는 생각했다
혹시 미래의 너를 상상하고 있는거니?
 
비는 오랫동안 그렇게 소녀곁에 있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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