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그리움

만순할머니와 오천원

wind15 2025. 4. 27. 21:40

나의 할머니는

키가 자그마하셨고 머리는 항상 동백기름을 발라 쪽을 지셨다.

내 어린 눈에도 할머니는 참 예쁘셨다.

울 할아버지 모습은 외출하실때 갓쓰시고 두루마기를 입으셨으니

내 어린 눈에 할아버지는 훈장님 포스였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두분은 찐 사랑이시다.

 

할머닌 늘 한복을 입고 계셨고

버선을 벗은 할머니 맨발을 본적이 없다.

댓돌위에 할머니 흰고무신은 눈이 부실정도로 하얗었다.

할머니는 우리들한테 인기가 최고였다.

할머니 속곳안은 보물창고 

별의 별게 다 나왔다. 

분홍색 제사사탕도 나왔고 약과도 나왔다 또 어느날은 곶감도 나왔다.

물론 돈도 나왔다.

집안 행사가 있는 날이면 우리는 제일 먼저 할머니를 찾았고 

할아버지는 인기가 별로없었다.

근엄하신 표정으로 기다란 곰방대를 늘 태우고 계셔서 무서웠다.

지금생각해보면 할아버지가 많이 심심 하셨을것 같다.

 

할머니는 가끔씩 우리집에 오셨는데 주무시고 가지는 않으셨다.

할머니는 특별한 손을 가지고 계시다.

일명 약손

난 어릴때부터 배앓이를 많이했고

할머니가 그때문에 우리집에 자주 들리셨다고 한다.

그때 할머니가 해준 처방은 

내 배위에 할머니 왼손바닥을 펴고 오른손을 오무려서 톡톡 두드리신다.

그러다가 손바닥을 펴시고 배주변을 살살 돌리면서 이렇게 말하신다.

"할미손은 약손 할미손은 약손

배야배야 아프지 말고 어서어서 나아라 할미 손은 약손"

신기하게도 할머니 손이 닿으면 아팠던 배가 싹 나았다.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해주셨던것 같다.

항상 할머니 손에 난 잠이들었으니까

어렸을때 부터 할머니 손에 내 배를 맡겼으니 그 둘의 사랑은 유별났었다.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좋았으니까.

 

어느날 할머니가 다녀가시고 전화가 왔다.

"응 할미다 니 학교갔다 오는거 못보구 가삣다...책상위에 그 뭐 지도책 같은거 있지

거기 갈피에 돈 끼워놨다 끊는다"~뚝

내가 말할 틈도 없이 끊어진 전화 

책갈피에는 천원짜리5장이 있었다.

"아 할머니~" 

난 그때 천원짜리 5장을 잊지못한다.

어린마음이었지만 마음이 짠했던 거로 기억한다.

울었던 것 같다.

 

잘 놀란다고 부엌으로 데려가서 참기름 한숟가락 입에 넣어주신 내 할머니.

깨소금 좋아한다고 큰엄마 몰래 밥공기가득 퍼다주신 내 할머니.

배앓이 한다고 팔이 아프도록 배를 만져주신 내 할머니.

벽장에 숨겨둔 귀한 먹거리 다 내어 주신 내 할머니.

 

오늘은 내 만순할머니가 많이 보구싶네.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야 들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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